2015/02/27 10:50

<듀오링고> 영어로 스페인어 배우기 일상의 기록



 1.
 난 영어를 못한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영어를 배우기 시작해서 영어를 배운지 꼬박 15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영어는 가장 자신없는 과목이다. 어렸을 적, 아빠는 항상 일가 친척들 앞에서 내 영어실력을 자랑을 하고 다니셨다. 아빠가 '영어가 영어로 뭐지?'하고 물어보면, 언제나 나는 "잉글리씨!"하고 혀짧배기 발음으로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러면 아빠는 어이구 우리 공주 영어 잘한다며 내 볼에 뽀뽀를 해주시곤 했다. 영어 조기교육이 일상화된 요즘 같았으면 아는 영어가 겨우 잉글리시 밖에 없냐고 타박했겠지만, 그땐 잉글리시를 아는 것만으로도 대단했다. 나는 스스로도 영어를 잘한다고 믿었다. 할 줄 아는 영어라곤 고작 잉글리씨, 애풀, 버네너 뿐이었지만 말이다.
  영어를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영단어 받아쓰기를 했는데 단 한 문제도 빠짐없이 다 틀렸다. 여차저차 해서 알파벳 정도는 쓸 줄 아는 수준이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with'라는 단어를 써야하는데 한참을 고민해서 쓴 답은 'widz'였다. 받아쓰기를 다 틀린 후로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고, 흥미도 잃었다. 중학교 때도 내 영어 성적은 70~80점대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중학교 때는 교과서만 무식하게 달달 외우면 그럭저럭 괜찮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방법도 고등학교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열심히 교과서만 달달 외웠는데 시험 문제에서는 교과서에 없는 문제가 나왔다. 50~60점이 일상이었다. 매일같이 마더텅과 EBS를 붙잡고 씨름했지만 성적은 제자리걸음이었다. 결국 수능은 멋지게 4등급을 찍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재수. 사교육 덕인지 EBS 덕인지 난생 처음 98점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그것도 수능에서 말이다.
  덕분에 서울에서 꽤 괜찮은 대학교에 입성했다. 그래, 내가 영어를 안 해서 그렇지 못하는 게 아니야. 여기서 수능 98점 넘는 애가 얼마나 되겠어. 수능 대박을 맛본 나는 오만할 정도로 기세등등했다. 사방팔방에 외고 출신, 유학파, 이민파 애들이 포진해 있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주입식 교육의 대표주자였던 나는 읽고 들을 줄만 알았지 입 뻥긋 해본 적도 없는데, 온통 네이티브 스피커 천지였다.
  다시 영어에 대한 자신감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와는 비교되지 않게 실력차가 컸기 때문에 노력으로 따라잡을 생각조차 못했다. 재수 시절에도 내 돈 들여가며 어렵게 사교육을 했던 처지라, 비싼 돈 주고 영어학원 다닐 생각은 일찌감치 접었다. EBS로 토익, 토플 공부도 해봤지만 그때뿐이지 영어에 대한 흥미를 불러 일으키진 못했다.
  결국 고민 끝에 올해 처음으로 영어회화학원을 끊었다. 배달 알바도 토익 성적 요구하는 세상에 영어 못하면 취업할 수 있는 곳도 없거니와, 이대로 가단 정말로 영어와 담쌓고 살 것 같아서 없는 용기를 쥐어짜 학원에 등록했다. 처음 레벨테스트를 봤는데, 열심히 준비해 간 성과 없이 가장 기초반에 배정받았다. 사실 레벨1반과 2반 중에 택하라고 했는데, 자신이 없어서 1반에 등록했다. 기초반은 진짜 기초반이었다. 영어 한 자 모르는 사람들도 있어서 얼떨결에 반에서 내가 제일 잘하는 학생이 됐다. 그래도 그 덕에 조금 자신감을 얻었다. 예전 같았으면 무식이 탄로날까봐 교실 한 구석에 잔뜩 찌그러져 있었을 텐데, 요즘엔 내가 모르는 건 남들도 모르겠지 싶어서 원어민 선생님께 겁 없이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내 스스로도 이런 변화가 놀랍기만 하다.
 

  2.
  영어 실력도 영 아닌지라, 사실 다른 언어를 배우는 건 꿈도 못 꿨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 일본어를 조금 배우긴 했지만 다 잊어버려서 지금은 히라가나, 가타카나 조금 읽는 수준이다. 중국어는 대학교 1학년 때 교양 필수로 배웠는데, 그건 진짜 하나도 모르겠다. 그나마 일본어는 내가 뭘 배우고 있는지는 알았는데, 중국어는 수업 시간에 말을 하면서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 몰랐다. 아 그리고 수능 때 제2외국어로 아랍어도 조금 공부했었는데 그건 진짜 하... 한숨만 나온다. 글씨인지 그림인지 헷갈리는 구불구불 글자와 다른 그림 찾기처럼 미세하게 다른 모양의 점들은 언제나 좋은 수면제 역할을 했다.
  남들은 3개국어는 기본, 4개국어까지도 한다는데, 나는 어째 2개국어도 벅차다. 그래서 내가 스페인어를 배우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것도 영어로 스페인어를 공부하다니. 영어도 못하는 내가 한국어로 스페인어를 공부하는 것보다 영어로 스페인어를 공부하는 게 더 쉽다고 한다면 믿겠는가.
  최근 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듀오링고(Duolingo)' 덕에 나는 스페인어 공부에 푹 빠졌다. 스페인어에는 유독 된소리가 많은 지라 경망스럽게 들려서, 스페인어를 공부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공부해보니 상당히 뷰리풀한 언어다. 된소리가 많아서 발음하는 재미도 있고, 혓바닥을 드릴처럼 떠는 듯한 rr발음은 새로운 도전의식을 불태운다.
  우리나라 언어 교육시스템은 읽고 듣기에만 편중된 경향이 있다. 수능이나 토익 점수 따기에는 유효할 지 몰라도, 정작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그리고 가르치는 입장에서 평가하기는 쉬워도, 배우는 입장에서 알아가는 즐거움이 없다. 듀오링고는 읽고 듣고 쓰고 말하기 모두를 가르친다. 그리고 학습자 스스로 일일 학습 목표치를 정할 수 있게 하고, 이를 달성할 때마다 경험치를 제공해서 목표달성을 독려한다. 경험치를 쌓을수록 레벨이 올라가는데, 레벨이 오를 때마다 링곳을 제공한다. 이 링곳으로는 아바타 같은 외형을 구입할 수도 있고, 아니면 보너스로 idiom이나 작업 걸 때 좋은 표현 같은 걸 배울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게 다 무료다. 영원히. 물론 듀오링고는 사람이 직접 가르치는 게 아니라 자동화된 교육 시스템이기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 (아직까지 본 적은 없지만) 제시문에 비문이 있을 수 있고, 분명 맞게 답을 했음에도 오답처리할 때도 있다. 예를 들면, 'My father is the famous lawyer.'라는 문장을 해석한다고 치자. 그러면 '나의 아버지는 유명한 변호사입니다.'는 정답인 반면, '우리 아빠는 유명한 변호사야.'는 오답이다. 또 문법의 경우, 용언의 활용을 배운다 치면, 활용형을 모두 알려주고 문제를 내는 게 아니라, 일단 문제부터 제시해서 맞으면 맞는 대로, 틀리면 틀리는 대로 답을 알려주는 식이다. 수영에 비유하자면, 헤엄치는 법부터 알려주는 게 아니라 일단 물에 빠뜨리고 보는 식인 셈이다. 그래서 배우는 입장에서는 어째서 이게 정답이 되고, 어째서 이게 오답이 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듀오링고는 이러한 한계를 집단지성을 통해 극복하고 있다. 문제나 답이 잘못된 경우 언제든지 피드백을 보낼 수 있고, 모르는 것은 코멘트를 남겨서 다른 유저들에게 물어볼 수 있다. 
나도 스페인어를 공부하면서 발음이나 문법이 헷갈릴 때가 많은데, 코멘트에서 네이티브 스페니쉬들이 남긴 답을 보고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코멘트 시스템은 단순히 정보 습득 기능을 넘어서, 하나의 재미 요소로도 작동한다. 듀오링고에서 제시하는 예문 중에는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문장들이 많다. 가령 'El cangrejo come pan.(The turtle eats bread.)'라는 문장이 제시되면 꼭 'turtle eats bread? not make sense.' 같은 코멘트가 달린다. 그리고 그 밑에는 'why not? my turtles do.'라는 리플이 달린다. 그리고 'Tu no hablas espanol.(You don't speak Spanish.)'라는 문장이 제시되면 'I know. So I am trying.' 같은 코멘트가 달려서 보는 사람으로서 공감과 짠한 마음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덧글

  • 2017/03/26 09:16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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