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이 있다. 좋은 일이 일어나기까지는 수많은 고난과 시련이 있다는 말이다. 천운을 타고났다한들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도 아니고, 박복한 운명을 타고났다한들 항상 나쁜 일만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네 인생사 사연은 가지각색이래도 살아가는 굴곡은 비슷하다.
인생은 거기서 거기지만 사람들이 체감하는 인생의 무게는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남들보다 안락하고 부유한 삶을 살면서도 인생을 가혹하다 느끼고 누군가는 누가 봐도 불운한 삶을 살면서도 정작 본인은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
무엇이 인생을 이토록 다르게 만드는가. 바로 인생을 관조하는 태도의 차이다. 비관적인 사람은 인생의 바로 앞을 본다. 좋은 일이 일어날 때 그는 불안해한다. 좋은 일이 있고 나면 반드시 나쁜 일이 일어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좋은 일이 일어나도 마음 편히 현재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한다. 나쁜 일이 일어나면 역시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며 안도한다. 그리고 비극 속 주인공마냥 자신의 불행한 인생을 곱씹으며 그 비극 속으로 더 깊게 침잠한다.
낙관적인 사람은 인생을 보다 멀리 본다. 좋은 일이 일어날 때 현재의 행복을 마음껏 누린다. 나쁜 일이 일어나더라도 호사다마라 생각하며 언젠가는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후에 좋은 일이 일어나면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며 자신감에 넘친다. 동화 속의 주인공들이 모두 그러하듯 수많은 역경이 닥치더라도 결국엔 행복한 결말을 맺게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결국 인생이란 끝나기 전까지는 수많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반복인데, 비탈길을 끝으로 보느냐 그 뒤에 있는 먼 산꼭대기를 끝으로 보느냐에 따라 인생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낙관적인 시선으로 인생을 살라는 말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러는 편이 좋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단순히 ‘그렇다’고만 결론내리는 것은 너무 진부하지 않은가. 수백 수천 가지 자기계발서들은 천편일률적으로 입을 모아 ‘인생을 낙관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낙관적으로 살 수 있는지 말해주진 않는다. 거기에 낙관적인 것이 정말로 좋은 것인지, 낙관적인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심은 찾아볼 수조차 없다.
세상에는 인생을 낙관하는 사람보다는 비관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좋은 예감은 예상을 벗어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슬픈 예감은 대부분 틀리지 않는다. 확률적으로만 따져도 인생에서 좋은 일이 일어날 확률보다는 나쁜 일이 일어날 확률이 훨씬 높다. 그러니 인생을 비관하는 것이 당연하다. 눈앞에 고난과 시련 천지인데 인생을 쉽게 낙관하는 편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
이제 우리는 자기계발서를 읽고 하루아침에 낙관적인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는 신화를 버려야 한다. 수십 년 동안 찌워온 살을 하루아침에 뺄 수 없듯이 수십 년 동안 길들여온 의식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다. 애써 낙관적으로 변하려고 노력하다 실패할 때 느끼는 좌절감은 더 깊은 비관의 수렁으로 자기자신을 끌어내린다.
인생을 낙관할 수 없다면, 비관적인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차라리 비관적인 자신을 긍정하는 것은 어떨까. 이것이 낙관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낙관적이지 못한 자신을 구박하기 전에 한번 반문해보자. 낙관적인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이고, 비관적인 것이 꼭 나쁜 것인가?
우리는 인생에 놓인 수많은 기로에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그런 크고 작은 선택들이 오랫동안 누적된 결과물, 혹은 누적되는 과정을 우리는 진화라 부른다. 진화가 항상 최상의 결과물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살아남기 위해 매순간 최선의 선택을 한 결과일 뿐이다. 당신이 비관적인 시각을 가지게 된 것도 비관적인 시각을 갖는 것이 당장의 생존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비관적인 사람은 낙관적인 사람보다 불행한 일에 더 민감하므로 불행한 일이 닥치기 전에 미리 예상하고 더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 그것이 실제적인 준비든 마음의 준비든, 일단 불행한 일에 적응할 대비가 되어있다는 뜻이다. 반면 낙관적인 사람은 앞으로 일어날 불행한 일에 대비가 되어있지 않으므로 비관적인 사람보다 직격타를 맞기 쉽다. 이렇게 보면 꼭 낙관적인 것이 좋은 것도 아니고 비관적인 것이 나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비관적인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해도 괜찮다.
비관적인 시각의 장점은 이제 알겠다. 그럼 이대로 비관적인 채 살라는 말인가? 비관성이 삶의 적응에 유리하다 하더라도, 낙관성이 가지는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비관적인 사람은 쿠데타로 집권한 왕과 같다. 왕이 되는 목적을 달성해도 언제나 누군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지 않을지, 이 행복이 과연 얼마나 갈지 걱정하며 불안 속에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실제적인 위협이 없을 때에도 최악의 상황을 걱정하며 사방에 귀를 쫑긋거리는 토끼처럼 인생을 살고 싶은가?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는 결코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없다.
우리는 마음을 완전히 비울 때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부처가 아니다. 힘겹게 노력해서 얻은 결과물을 포기하고 무소유로 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무언가를 잃어도 잃은 만큼, 혹은 잃은 것보다 더 값진 보상을 얻는다면 어떨까. 그건 좀 견딜만 하지 않은가. 여기서 드디어 낙관성이 빛을 발한다.
인생에서 나쁜 일이 닥치기 전에 비관적인 현실인식으로 몸과 마음을 대비시켜라. 그리고 나쁜 일이 진짜로 닥쳤을 때 낙관적인 생각을 유도해라. 나쁜 일로 받은 타격이 크지 않다면 ‘예상했던 것과 달리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타격이 크다면 그 타격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해보라.
‘이번 일로 내가 가진 많은 것을 잃었어. 하지만 잃은 것이 있다면 반드시 얻은 것도 있겠지. 내가 이번 일로 얻은 것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조급하게 마음먹는 편보다 신중하게 상황을 검토하는 편이 더 유익하다는 깨달음이야. 미리 적은 값을 치르고 큰 깨달음을 샀다고 생각하자. 덕분에 앞으로 훨씬 큰 시련이 닥쳐오면 지금보다 더 성숙하게 대처할 수 있을 거야.’
폭풍이 지나간 후에는 반드시 고요와 평화가 찾아온다. 이때 비관적인 시각만 지닌 사람은 폭풍 속에서 모든 것을 잃은 빈털터리지만, 낙관적인 시각까지 겸비한 사람은 한층 더 성숙한 사람이 된다. 나무는 물과 햇빛이 풍부할 때 키가 자라고 풍성해진다. 하지만 나무의 껍질이 두꺼워지고 속이 단단해지는 내적 성장은 모진 추위를 견디면서 이루어진다. 수많은 겨울을 이겨낸 나무는 돌풍에도 쉽게 꺾이지 않는다. 인간의 삶 역시 그러하다.
인생은 거기서 거기지만 사람들이 체감하는 인생의 무게는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남들보다 안락하고 부유한 삶을 살면서도 인생을 가혹하다 느끼고 누군가는 누가 봐도 불운한 삶을 살면서도 정작 본인은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
무엇이 인생을 이토록 다르게 만드는가. 바로 인생을 관조하는 태도의 차이다. 비관적인 사람은 인생의 바로 앞을 본다. 좋은 일이 일어날 때 그는 불안해한다. 좋은 일이 있고 나면 반드시 나쁜 일이 일어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좋은 일이 일어나도 마음 편히 현재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한다. 나쁜 일이 일어나면 역시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며 안도한다. 그리고 비극 속 주인공마냥 자신의 불행한 인생을 곱씹으며 그 비극 속으로 더 깊게 침잠한다.
낙관적인 사람은 인생을 보다 멀리 본다. 좋은 일이 일어날 때 현재의 행복을 마음껏 누린다. 나쁜 일이 일어나더라도 호사다마라 생각하며 언젠가는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후에 좋은 일이 일어나면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며 자신감에 넘친다. 동화 속의 주인공들이 모두 그러하듯 수많은 역경이 닥치더라도 결국엔 행복한 결말을 맺게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결국 인생이란 끝나기 전까지는 수많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반복인데, 비탈길을 끝으로 보느냐 그 뒤에 있는 먼 산꼭대기를 끝으로 보느냐에 따라 인생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낙관적인 시선으로 인생을 살라는 말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러는 편이 좋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단순히 ‘그렇다’고만 결론내리는 것은 너무 진부하지 않은가. 수백 수천 가지 자기계발서들은 천편일률적으로 입을 모아 ‘인생을 낙관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낙관적으로 살 수 있는지 말해주진 않는다. 거기에 낙관적인 것이 정말로 좋은 것인지, 낙관적인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심은 찾아볼 수조차 없다.
세상에는 인생을 낙관하는 사람보다는 비관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좋은 예감은 예상을 벗어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슬픈 예감은 대부분 틀리지 않는다. 확률적으로만 따져도 인생에서 좋은 일이 일어날 확률보다는 나쁜 일이 일어날 확률이 훨씬 높다. 그러니 인생을 비관하는 것이 당연하다. 눈앞에 고난과 시련 천지인데 인생을 쉽게 낙관하는 편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
이제 우리는 자기계발서를 읽고 하루아침에 낙관적인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는 신화를 버려야 한다. 수십 년 동안 찌워온 살을 하루아침에 뺄 수 없듯이 수십 년 동안 길들여온 의식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다. 애써 낙관적으로 변하려고 노력하다 실패할 때 느끼는 좌절감은 더 깊은 비관의 수렁으로 자기자신을 끌어내린다.
인생을 낙관할 수 없다면, 비관적인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차라리 비관적인 자신을 긍정하는 것은 어떨까. 이것이 낙관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낙관적이지 못한 자신을 구박하기 전에 한번 반문해보자. 낙관적인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이고, 비관적인 것이 꼭 나쁜 것인가?
우리는 인생에 놓인 수많은 기로에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그런 크고 작은 선택들이 오랫동안 누적된 결과물, 혹은 누적되는 과정을 우리는 진화라 부른다. 진화가 항상 최상의 결과물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살아남기 위해 매순간 최선의 선택을 한 결과일 뿐이다. 당신이 비관적인 시각을 가지게 된 것도 비관적인 시각을 갖는 것이 당장의 생존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비관적인 사람은 낙관적인 사람보다 불행한 일에 더 민감하므로 불행한 일이 닥치기 전에 미리 예상하고 더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 그것이 실제적인 준비든 마음의 준비든, 일단 불행한 일에 적응할 대비가 되어있다는 뜻이다. 반면 낙관적인 사람은 앞으로 일어날 불행한 일에 대비가 되어있지 않으므로 비관적인 사람보다 직격타를 맞기 쉽다. 이렇게 보면 꼭 낙관적인 것이 좋은 것도 아니고 비관적인 것이 나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비관적인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해도 괜찮다.
비관적인 시각의 장점은 이제 알겠다. 그럼 이대로 비관적인 채 살라는 말인가? 비관성이 삶의 적응에 유리하다 하더라도, 낙관성이 가지는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비관적인 사람은 쿠데타로 집권한 왕과 같다. 왕이 되는 목적을 달성해도 언제나 누군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지 않을지, 이 행복이 과연 얼마나 갈지 걱정하며 불안 속에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실제적인 위협이 없을 때에도 최악의 상황을 걱정하며 사방에 귀를 쫑긋거리는 토끼처럼 인생을 살고 싶은가?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는 결코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없다.
우리는 마음을 완전히 비울 때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부처가 아니다. 힘겹게 노력해서 얻은 결과물을 포기하고 무소유로 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무언가를 잃어도 잃은 만큼, 혹은 잃은 것보다 더 값진 보상을 얻는다면 어떨까. 그건 좀 견딜만 하지 않은가. 여기서 드디어 낙관성이 빛을 발한다.
인생에서 나쁜 일이 닥치기 전에 비관적인 현실인식으로 몸과 마음을 대비시켜라. 그리고 나쁜 일이 진짜로 닥쳤을 때 낙관적인 생각을 유도해라. 나쁜 일로 받은 타격이 크지 않다면 ‘예상했던 것과 달리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타격이 크다면 그 타격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해보라.
‘이번 일로 내가 가진 많은 것을 잃었어. 하지만 잃은 것이 있다면 반드시 얻은 것도 있겠지. 내가 이번 일로 얻은 것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조급하게 마음먹는 편보다 신중하게 상황을 검토하는 편이 더 유익하다는 깨달음이야. 미리 적은 값을 치르고 큰 깨달음을 샀다고 생각하자. 덕분에 앞으로 훨씬 큰 시련이 닥쳐오면 지금보다 더 성숙하게 대처할 수 있을 거야.’
폭풍이 지나간 후에는 반드시 고요와 평화가 찾아온다. 이때 비관적인 시각만 지닌 사람은 폭풍 속에서 모든 것을 잃은 빈털터리지만, 낙관적인 시각까지 겸비한 사람은 한층 더 성숙한 사람이 된다. 나무는 물과 햇빛이 풍부할 때 키가 자라고 풍성해진다. 하지만 나무의 껍질이 두꺼워지고 속이 단단해지는 내적 성장은 모진 추위를 견디면서 이루어진다. 수많은 겨울을 이겨낸 나무는 돌풍에도 쉽게 꺾이지 않는다. 인간의 삶 역시 그러하다.
태그 :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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